안성 매산리 석불입상

기사입력 2012.06.21 13:16 조회수 4,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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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산리 석불입상 (梅山里石佛立像)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37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 366

 

미륵당이라 부르는 높은 누각 안에 모셔진 높이 5.6m의 미륵불상이다.

석가모니 다음으로 부처가 될 것으로 정해져 있는 미륵은 보살과 부처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어

그 모습 또한 보살상과
불상 두 가지 형태로 제작되는데 이 입상은 보살상으로 만들어졌다.

이 미륵불은 높은 머리 위에 사각형의 보개(寶蓋)를 쓰고 있다. 높은 보개는 고려 초기 보살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으로
이를 통해서 이 불상이 고려 초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목구비는 비례가 맞지 않아 괴이한 느낌을 준다. 두 귀는 볼에 밀착시키며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아 있고,

굵은 목에는 번뇌..고난을 상징하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어 있다.

(法衣)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아래서 내려오면서 U자형의

옷 주름을 이루고 있다
.

오른손 모양은 중생의 모든 두려움을 없앤다는 의미의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있다.

얼굴에 보이는 평면적인 조각수법과 부조화, 신체의 크기에 비해 좁은 어깨 등은

충남 논산의 개태사지석불입상(보물 제 219)과 비슷하여 고려 초기 석불양식을 잘 보여준다.

태평미륵라고도 부른다.

 

안성에는 특히 미륵불이 다른 지방보다 많다.

 

 

보개(寶蓋) : 불상을 보호하고 장식하기 위하여 머리 위에 설치하는 것.

미륵부처 : 미륵보살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불이 열반한 뒤 567천만년이 지난 후 인간세계에 나타나

용화수 아래에서 3번 설법하고 성불하여 석가모니가 구제할 수 없었던 중생들을 구제한다는 보살이다.

그래서 지금도 천상의 도솔천이라는 곳에서 수행을 계속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미술적 가치는 별로 없지만 이 지역에 분포하는 다른 미륵과 함께 당시 미륵신앙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이 태평미륵앞에는 [미륵당 오층석탑]이 나란히 보호담장 안에 자리해있다.
 
 

 

 

 

미륵당 오층석탑

향토유적 제 20호

석탑 전체 높이는 1.9m로 탑지석(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 의하면 993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2~4층 몸돌과 4층 옥개석은 유실된 상태고 상륜부 장식도 보이지 않는다.

 

 

안성지역의 마애불, 석불 20기를 계속 소개하겠습니다.

 

[이규석 기자 bornad@hanmail.net]

[이규석 기자 born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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