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근현대 연극사 아카이브 전시 -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

기사입력 2017.12.27 18:01 조회수 53,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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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8일(목)부터 2018년 1월 14일(일)까지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수원미술전시관 프로젝트 스페이스 2에서 <수원 근현대 연극사 아카이브 전시 -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열린다.


수원문화재단에서 주최하고 수원문화재단 문화사업부 예술창작팀이 주관하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19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원의 근현대 연극사에 대한 자료와 영상이 함께 전시된다.


수원에서 본격적인 연극전문극단이 출현한 것은 1960년대다.

1961년 수원농고와 수원여고 연극반 출신들을 주축으로 창립된 화홍극회는 사실상 수원과 경기 연극의 시작이다.  20대 초반의 젊은 학생들로 구성된 화홍극회는, 산하극회를 조직해 당시 지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동극 등 파격적인 시도를 이어가며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창단 이듬해 4회 공연을 끝으로 단원들의 군입대와 취업 등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지면서 수원연극계는 오랜 침체기를 맞는다.


화홍극회 해산 이후 긴 암흑기를 보낸 수원연극계는 1970년과 1971년 두해에 걸쳐 앙코르, 성예, 얼 등 자기만의 색깔로 무장한 세 개의 극단이 동시에 생겨나면서 활기를 띠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 역시 2년 만에 모두 활동을 중단했다. 하나의 극단도 유지가 쉽지 않은 지역의 특성상 세 개의 극단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는 것은 그 활동이 오래갈 수 없음을 예고했다.그런데 다시 긴 침체기에 들어가는 듯 했던 수원연극이 부활하는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한다. 흩어졌던 세 극단이 모여 하나의 이름으로 참가했던, 1972년 제1회 전국소인극 경연대회에서 전국의 쟁쟁한 팀들을 제치고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수상하고, 한껏 고무된 분위기 속에서 수원은 물론 경기지역 최초의 소극장이 문을 연다. 그리고 바로 이 곳에서 수원연극사의 결정적 장면 극단 ‘수원예술극장’이 태어난다. 수원예술극장은 60년대 화홍극회부터 70년대 초반 앙코르, 성예, 얼의 멤버를 총망라한 구성이었다.수원연극계의 역량을 통합한 극단 수원예술극장은 1979년 한국연극협회 수원지부로 정식 승인받고, 이듬해에는 경기도지회로 승격되면서 이후 경기연극을 이끌게 된다.


비슷한 시기, 수원예술극장과 더불어 80년대 수원연극을 이끈 쌍두마차인 극단‘성’이 잉태되고 있었다. 1979년,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들이 만든 <연극동우회>가 모태가 돼, 1983년 창단한 극단‘성’은 3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오는 수원연극의 간판이다. 하지만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열정으로 가득찬 젊은 연극인들은 1981년 드디어 자신들만의 전용극장을 개관한다. 당시 예식장이었던 건물의 예식홀 하나를 연극만을 위한 공간으로 꾸몄다. 화홍소극장은 공연만을 위한 수원 최초의 전문소극장이다.80년대는 수원연극의 부흥기이자 소극장 전성시대였다. 수많은 연극들이 소극장과 함께 태어났고, 소극장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졌다.무대를 찾아 떠돌던 연극인들에게 소극장은 존재의 이유 그 자체였다. 전용극장이 아니더라도 연극만 할 수 있다면 연극인들은 어디든 달려갔다. 돌다방 소극장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주축멤버들이 협회활동에 주력하면서 잠시 주춤했던 수원예술극장은 80년대 중반 다시 소극장을 열고 재기에 성공한다. 극단 성도 화홍소극장 폐관 이후 거듭된 떠돌이 생활과 잠시 신풍동 소극장을 거쳐 1988년 장안문 로터리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었다. 이른바 80년대 후반 남문을 중심으로 한 극단 수원예술극장과 북문을 중심으로 한 극단 성의 양강구도가 자리잡은 것이다. 수원예술극장이 보다 대중적인 연극을 지향했다면, 극단 성은 좀 더 사회의식이 있는 연극을 주로 올리면서 수원의 두 극단은 관객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히는 역할을 했다.


90년대를 넘어오면서 수원연극계는 큰 변화의 바람이 분다.경기도 문화의 전당 전신인 경기도 문화예술회관이 개관하고 경기도립극단이 창단되었다.경기도립극단 창단은 수원예술극장이 주도했다.체계적인 시스템 속에서 본격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수원연극이 한 단계 도약하는 경사를 맞았지만, 오히려 지역연극계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관객들은 시설 좋은 큰 공연장으로 발길을 돌렸고, 소극장들은 잇따라 문을 닫았다. 하지만 경기도립극단 출범 이후에도 소극장을 중심으로 한 자생의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경기도립극단에 들어갔던 수원예술극장 단원들이 나와서 만든 극단 예인을 비롯해, 한우리, 촌벽 등 전문극단들과 직장,주부극단 등 많은 아마추어극단들이 힘든 시기속에서도 작은 무대들을 이어갔다.90년대 주목할 만한 것은 거대한 변화의 파고 속에서 수원연극이 자생하기 위한 노력으로 지역의 이야기를 찾아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극단 성 역시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정조대왕, 혜경궁 홍씨, 노작 홍사용, 제암리 교회 등 지역의 역사와 인물을 조명한 창작극들을 끊임없이 선보였다. 지역의 한계를 오히려 지역색으로 정면돌파한 이런 시도들은 성공적이었다. 수원 최초로 일본, 이집트 등 해외의 국제연극제에 참가해 수원지역의 이야기로 큰 호응을 얻고, 전국적으로도 수원연극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이는 역할을 했다. 점차 규모있는 연극에 밀려 소극장 시대를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지역연극계가 지역의 소재를 적극 발굴함으로써 새로운 활로를 찾아낸 것이다.그 중 백미는 1996년 수원화성 축성 200주년을 기념해 극단성이 기획한 수원성국제연극제였다.화서문을 주무대로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의 유명극단들과 극단 성이 펼친 아름다운 향연은 지역의 문화유산이 훌륭한 연극무대가 될 수 있다는 점과, 지역에서 민간주도로 국제적인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는 점에서 세상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처음엔 2년에 한번 여는 비엔날레였던 수원성국제연극제는 1998년 수원화성국제연극·무용제란 이름으로 장르를 넘나드는 무대로 세상의 이목을 끌며 매년 열리는 행사로 전환됐다. 이듬해인 1999년엔 지역의 문화인사들을 중심으로 탄탄한 진용을 갖춘 법인을 설립하고, 수원화성국제연극제로 거듭났다.수원화성국제연극제는 점차 외연을 확대하며 내실있는 기획으로 국내외 유수의 극단들이 대거 참여하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국제연극제로 자리매김했고, 2015년부터 현재의 이름인 수원연극축제로 자리를 잡았다.경기도립극단 창단과 국제연극제 창설 등 큰 족적을 남겼지만 21세기 수원연극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소극장이 사라진 시대. 그것은 풀뿌리 연극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었다. 배우의 몸짓과 대사 하나하나에 관객들도 덩달아 신이 난다.


수원 아마추어 극단 ‘메카네’의 무대는 관객의 숨소리까지 담아낸 후에야 막을 내린다. 평범한 회사원, 자영업자, 주부. 이들을 무대로 모은 힘은 연극에 대한 열정 하나다. 지역의 아마추어 극단이 수년간 정기공연을 하고, 자신들만의 소극장을 운영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60년대 화홍극회로부터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수원의 수많은 전문극단이 역사로만 남은 지금, 그 빈 자리를 많은 아마추어 극단들이 채우고 있다.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도 이들은 수원극단연합회를 조직해, 함께 무대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 수원은 굵직한 수원연극축제와 경기도립극단 등 중량감 있는 무대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한편엔 열정으로 가득찬 작은 무대들이 펼쳐지고 있다. 수원 연극 반세기. 도시는 커졌고 무대도 커졌다.그 사이 땀과 눈물을 받아내던 수많은 무대들이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극본과 배우가 바뀐 채 또 하나의 무대가 오른다.


분명한 것은 아직 연극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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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원기자 기자 ggartdail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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