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상, Stone-Dream•ing-O, 40x30x30cm, Stone, 2012
자연상태의 돌을 채취하여 그것으로부터 형태와 색채, 재질감 등을 감상으로 대상으로 삼는 전통적인 감성소통의 형식을 우리는 수석(壽石)이라고 부른다. 돌은 애초부터 있는 그대로의 형태와 색채, 무늬 등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만 인간은 그 돌을 통하여 나름의 주관적인 기호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자연으로부터 나온 미적형식으로 간주하여 수집과 감상의 대상물로 삼는다. 김희상은 한자문화권의 전통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수석문화를 현대미술의 맥락으로 끌고 들어와 그 의미구조를 재구조화하는 작업을 한다.
▲ 김희상, Stone-Dream•ing-B, 29x29x35cm, Stone, 2012
김희상은 수석이라는 기호의 영역을 예술적 소통의 장으로 끌어들여 자연적인 아름다움과 인공적인 아름다움의 경계를 묻는다. 인위적인 흔적을 가미하지 않은 자연상태의 돌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의 자의적인 행위이다. 수석문화는 돌에 언어적 해석을 가함으로써 의미작용을 유발하는 인간의 감성이 작동함으로써 가능해진다. 김희상은 이러한 돌과 인간의 인지작용에 개입한다. 그는 돌에 금을 그어 인공적인 행위의 흔적을 남김으로써 돌이 애초가 가지고 있던 의미망들을 확대하거나 변형하고 때로는 해체하여 전혀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매우 단순한 문양을 반복적으로 새겨넣는 김희상의 작업은 일종의 추상언어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추상이나 형상이냐의 문제를 넘어서 고정된 의미구조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개념미술의 관점에서 출발한다. 인체와 동물의 동세를 포착한 다수의 드로잉작품에서 김희상은 형상작업의 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초기의 형상조각들 또한 소조와 목조, 용접 등 다양한 조각 분야를 다뤄본 작가의 솜씨를 가늠하게 해준다. 그러나 김희상은 40대 후반에 접어든 지금 형상을 창출하는 작업보다는 자연물에 최소한의 조형적인 요소를 가미하는 추상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 김희상, Stone-Dream•ing-M, 25x25x35cm, Stone, 2011
그의 돌작업은 초기작 남근석 작업에 그 시발점을 둔다. 전통사회에서 남근석이 숭배의 대상이었다면 여근석은 불경과 외경의 대상으로 폄하되었다. 김희상은 그 숭배의 대상인 남근석을 예술의 장에 투여함으로써 숭배의 대상을 감상의 대상으로 제시하고자 했다. 절구방망이 같이 생긴 크고 작은 돌기둥의 끝을 남근 모양으로 다듬어서 세워놓은 남근석 작업들은 통하여 그는 전통문화 속에 존재하던 남근석의 기호학적 의미를 동시대의 예술의 장 속에 끌어들여 그 의미를 재해석하고 있다. 남성중심주의사회가 낳은 물신숭배의 문화를 예술적 표현의 모티프로 삼은 것이다.
이것은 고정된 관습을 재해석하는 비판적인 예술행위의 시작이다. 물론 남근석을 감상하는 근대인 관람자는 전근대인들이 행했을 제의적 숭배와는 거리가 먼 새로운 관점으로 그 작품을 해석한다. 그것은 남근이라는 인체부위를 돌로써 재현한 남근석의 상징성을 전시장이라는 공적인 영역에서 감상의 대상으로 전시함으로써 숭배의 대상물로서의 의미를 해체하는 예술적 행위이다. 전통문화 속의 남근석과 마찬가지로 전통문화 속의 수석문화 또한 오랜 시간동안 반복되어온 의미해석의 코드가 있다. 이른바 수석의 전형성 같은 게 있다는 것이다. 김희상은 돌에 금긋기라는 심플한 조형행위로 그 전형성을 깨는 작업을 하고 있다.
▲ 김희상, Stone-Dream•ing-D, 50x25x30cm, Stone, 2012
그렇다고 해서 김희상이 돌에 특정한 형상을 새겨 넣음으로써 사건을 기술하거나 풍경을 담아내는 식의 재현적인 예술표현을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금긋기는 반복적인 패턴문양일 뿐이다. 그것은 수직이나 수평의 반복적인 선일 수도 있고, 돌이 원래 가지고 있는 선적인 요소를 따라 긋는 유기적인 선일수도 있다. 그가 선택하는 돌에는 기하학적인 형태를 띠는 돌도 있고, 비정형적인 형상을 띠어 이른바 기암괴석의 묘미를 자랑하는 것도 있다.
때로는 나무나 인체를 연상하게 하는 형상을 가진 것도 있다. 김희상은 이렇듯 다양한 형상과 재질을 가진 돌들에 심플한 금긋기를 한다. 그의 금긋기는 자신이 원하는 형상을 그려넣는 것이 아니라 돌의 생김새에 맞춰 그 돌의 자연미에 추임새를 넣어주는 정도의 부분적인 것일 때도 있고, 때로는 전면적인 개입으로 인해 부분적으로나마 금긋기가 도드라져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는 반복되는 선의 연쇄에서 의미를 생성한다. 그것은 작업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의 희열이기도 하고 작업의 결과가 발산하는 새로운 서사의 발언이기도 하다. 돌의 형태에 따라 유동적으로 선의 흐름을 잡아내는 것이 김희상 작업의 출발이자 핵심이다. 그는 돌의 일부분에 인공의 흔적을 가하고 또 일부는 남겨놓음으로써 자연과 인공의 두 영역을 대비한다. 그의 작품은 보이는 각도에 따라 매우 다른 이미지를 유추하게 한다.
▲ 김희상, Stone-Dream•ing-K, 44x30x30cm, Stone, 2012
김희상이 선택한 돌들은 대체로 비구상적인 형상성을 가지고 있다. 이 돌들은 금긋기 작업을 통하여 새로운 언어를 획득함으로써 원래의 형상이 발산하는 의미구조 위에 또 다른 의미의 옷을 걸친다. 그는 돌의 형상에 자신의 추상언어를 가미한다. 김희상의 금긋기는 여러 갈래의 서사를 생성한다. 그것은 꿈꾸는 사람이나 꿈꾸는 나무 어머니의 젖가슴 모양에서 나오는 온화함과 풍요로움, 남녀 한 쌍이 서로 마주보고 선 로맨틱한 장면 등과 같은 문학서사일 수도 있고, 때로는 기하학적인 추상의 세계나 절제의 미, 여백의 미, 반복의 미와 같은 시각서사일 수도 있다. 때로 그는 수석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낮은 평범한 돌들에서도 소략한 선긋기 작업으로 그 돌의 자연미를 부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희상의 돌작업의 핵심은 서사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금긋기 작업은 서사의 문제를 넘어 개념의 문제를 환기한다. 돌을 선택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 자체가 이미 매우 개념적인 예술적 소통행위이다. 그는 채집한 자연물에서 의미를 캐내는 오브제 미학을 재해석한다. 고정된 가치와 의미를 재생산하는 관습적인 전통의 차원을 비판적 차원에서 재검토하며 보다 풍부한 의미를 생산하기 위함이다. 김희상의 핵심은 돌의 자연미를 예술적 차원에서 맥락화하는 예술적 개념 그 자체이다. 그것은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재발견하고 재해석하게 하는 일이며, 나아가 고정된 가치에 균열을 내고 의미생성의 맥락을 재구조화하는 비판적 태도이다. - 김준기(미술평론가)
이번 저시는 대전시 유성구 도룡동에 위치한 모리스갤러리(www.morrisgallery.co.kr)에서 4월 12일에서 4월 18일까지 열린다.
전시일정 : 2012. 04. 12 ~ 2012. 04. 18
관람시간 : Open 10:00 ~ Close 19:00(주말 18:00)
문의 : 대전시 유성구 도룡동 397-1 / 042-867-7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