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환展 - 明默 Bright Silence

기사입력 2012.03.29 11:51 조회수 1,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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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환, 명묵(明默)120114, 91x65cm, 캔버스 위에 종이, 아크릴릭과 돌가루 혼합, 2012


작업을 하는 동안 침묵이라는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오늘날엔 침묵이라는 말이 사어(死語)에 가까워지고 있다.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태박(太朴)' 이나 ‘시어(詩語)’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내가 하는 작업이 다른 양식이 할 수 없는 소통방식을 보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건 바로 침묵을 향한 어떤 통로, 온갖 소음을 뚫고 보일 듯 말 듯 한 소로(小路) 같은 것을 하나 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통로를 통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평소에 보이지 않던 사물의 본질에 조금이라도 다가서도록 할 수 있기를 바랐다.

막스 피카르트는 그의 저서 『침묵의 세계』에서 “어떤 의미에서 침묵은 현재, 과거, 미래를 하나로 만든다.”라고 했다. 20세기 최고의 건축가이자 침묵과 빛의 건축가로 불리는 루이스 칸은 침묵을 가리켜 “밝지도 않고(lightless), 어둡지도 않은(darkless) 그 무엇”이라고 했다. 침묵은 말이 정지된 상태, 즉 무언가 결여된 상태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침묵이란 그 속에 활발한 운동성을 지니고 있다. 한편으로 보면 비어 있는 것 같지만 꽉 차 있는 것이다. 다만 쉽게 만져지거나 듣고 볼 수 없을 뿐이다.

부재의 기운들로 가득 차 있는 어떤 충만. 그런 점에서 침묵은 상당히 적극적인 것이고, 지양보다는 지향에 의해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닐는지. 전시의 주제이자 작품의 제목인 '명묵(明默)'이란 말 그대로 ‘밝은 침묵’을 의미한다. ‘충만한 비어있음’, ‘존재와 우주의 합일’, ‘현재보다는 미래를’ 그리고 ‘위로와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다소 어려운 주제와 제목이지만 예술이란 원래 알아듣기 힘든 외침, 마치 빛의 목소리인 것만 같은 그런 외침이지 않던가.

▲ 김정환, 명묵(明默)120218, 117x91cm, 린넨 위에 아크릴릭, 2012


작업을 할 때 검은색, 파란색을 주로 사용했다. 세잔에 따르면, 색은 “우리 뇌와 우주가 만나는 곳”이다. 큰 존재의 화가에게 어울리는 멋진 표현이다. 클레도 이 말을 즐겨 인용했다. 검은색은 먹색을 의식한 것이다. “검은 가운데 검은 것이 가장 묘함으로 들어가는 문이다(玄而又玄 衆妙之門).”라는 노자(老子)의 말은 결코 단순한 검은색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어쩌면 이 말은 어떤 세계의 크나큰 매력을 가리키는 듯하다. 동양 전통에서는 검정(玄)을 오방색(五方色)을 뛰어 넘은 모든 빛깔의 근원으로 여겼다. 동양회화에서 말하는 먹색이야말로 우주가 창조될 때의 혼돈의 빛깔인 것이다. 먹색은 이미 색채학적 단일 먹색의 개념이 아니고 철학적 색채가 되었던 것이다.

파란색을 사용한 것은 예로부터 선조들이 학(鶴)과 같은 청렴결백한 선비의 색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true blue'라는 말이 진정한 파란색이란 뜻으로 '정절'의 의미로 쓰인다. 최근 보도를 보니 지구촌 사람들의 40퍼센트 이상이 파란색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이는 '파란 하늘'에서 연유한 것이다. 파란색은 젊음을 상징하고, 청춘이 있고, 그 안에는 파란 꿈이 있고 누군가 보고 싶은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다.

작업을 하면서 주제를 표현하는 데 적절한 표현기법으로 번짐을 택했다. 마음 깊숙이 퍼지는 울림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표현으로 번짐이 적절해 보였기 때문이다.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된 이후엔 주로 린넨 위에 번짐 효과를 드러내었다. 청나라 초기의 화가인 공현이 말한 ‘혼륜설(渾淪說)’을 바탕에 두었다. 일반적으로 문자 그대로 해석해 ‘혼륜’을 모호하고 분명치 않은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혼륜함을 없애야만 하는 것인 줄 안다. 혼륜의 진정한 의미는 ‘필과 묵이 모두 갖춰진 묘함에 있어 필법과 묵기의 구분이 없는 것’을 말한다. 즉 필묵이 융합된 혼연일체의 세계로, 이를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공현이 말한 것 중 ‘백혼륜(白渾淪)’인 먹을 사용할 때 연한 색감이 점점 겹쳐지게 하는 것, ‘회혼륜(灰渾淪)’인 먹의 농담에 따라 과하거나 모자람이 없는 중용의 화법을 응용해서 작업하였다.

▲ 김정환, 명묵(明默)120304, 194x130cm, 린넨 위에 아크릴릭, 2012


오래 전 현대 중국화의 대표작가인 가우복(賈又福)의 전시를 본 적이 있다. 작품에 사용한 인장 중 아직도 기억하는 문구가 “하찮게 버린 것을 주워 모은다(拾遺與伊).”라는 말이었다. 그는 이 말처럼 애써 남들이 지나쳐버리는 보잘 것 없는 것에서 숨은 가치를 얻고자 하였다. 작업을 하면서 내 주위에 버려진 것에 주목했다. 서예작업 중 임서(臨書) 후 책상구석에 쌓아둔 먹물 묻은 탁본첩, 사무실에 뒹굴던 날짜 지난 경제신문, 여행지에서 가져 온 전화번호부, 한 동안 수집했던 외국잡지 등을 작품 안으로 불러들였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에 위치한 인사아트센터(www.insaartcenter.com)에서 4월 11일부터 4월 16일까지 열린다.

문의 :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88 / 02-736-1020


■ 작가약력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주대학교 경영학과에서 학사, 한양대학교에서 미술교육학 석사를 마쳤다. 이번 전시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전공 석사학위 청구전시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서예를 해왔으며, 2003년 이후 하석(何石) 박원규(朴元圭) 선생 문하에서 서예(書藝), 전각(篆刻), 경학(經學)을 공부하고 있다. 아호는 장헌(章軒)이며, 현재 아주대학교에서 서예 강의를 맡고 있다. 1994년부터 대우증권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수석연구원)로 근무하고 있다.

대학 재학 시절 ‘전국대학미전’ 동상, 국전(國展)의 후신인 ‘제1회 대한민국 서예전람회’에서 특선을 수상했다.『월간서예』통권200호 기념 서예학술논문공모에서 금상을 수상해 서예평론가로 등단했다. 김달진미술연구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 발간한 『대한민국 미술인 인명록』에는 서예평론가로 등재되어 있다. 서예지 월간『까마』의 책임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서울아트가이드』등 미술지, 『월간서예』, 월간『묵가』등 서예지와 개인작품집에 80여회 이상의 평문을 발표하였다.

‘서울국제서예가전’ ‘한국서예밀레니엄전’ ‘국제전각전’ ‘삼문전’ ‘국제서예가협회전’ ‘홍익회화16인전’ ‘2011환경테마전’ 등을 통해 서예와 회화를 넘나드는 작업을 발표하고 있다. 2008년 서울백악미술관에서 회화로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1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환경미술협회 선정작가로 부스전을 가졌다. 2008년 아주대 총동문회에서 수여하는 자랑스러운 동문상(문화예술부문)을 수상하였다. 예술과 관련된 저서로는 서세옥, 김태정, 홍석창 선생 등을 인터뷰한『필묵의 황홀경』, 『열정의 단면』, 『박원규 서예를 말하다』등이 있고, 증권관련 저서로는 『차트의 기술』, 『주가차트 보는 법』이 있다.


 

[오창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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